좋은 시를 통해 관계의 의미 되새기기
류시화 시인의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참 아끼는 책 중 하나입니다. 류시화 작가의 책들을 연이어 읽게 해준 첫 책이었기도 하고 짧지만 좋은 시들로 가득차 있어요. 그 중에도 칼릴 지브란의 아래의 시는 어린 제게도 잘 모를 듯 하지만 깊은 의미를 전해주는 시였습니다. 제목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입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사랑하는 사이이더라도 좋은 의미로 거리를 두라는 내용을 보면서 사랑은 소유가 아님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내용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의미의 거리 두기
보통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사이라 하면 가까운 관계가 아닌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에서도 좋은 의미의 거리 두기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에서 아름다운 언어들로 표현된 내용들을 보면 결국 관계에 거리가 없어지면 서로를 향한 욕심과 기대만 남게 될 수 있습니다.
즉 서로가 그어놓은 각자의 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또는 친하다는 이유로 넘어서게 되면 편안한 관계는 불편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관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 선을 서로 넘어봄으로써 계속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소위 말하는 손절을 할지 결정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인간 관계란 것이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지켜야 할 선을 무의식 중에 넘을 수도 있고 좋은 의도로 타인을 챙기려다가 그 선을 넘을 수도 있어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생겨납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영역을 존중해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단은 내가 참는 것을 선택하고는 합니다. 그러다 감정이 쌓이면 상대방에게 털어놓거나 아니면 그대로 점점 더 멀어짐으로써 소원한 관계가 됩니다. 분명 상대방도 나를 위해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일텐데 결과는 엉뚱하게도 멀어진 관계가 됩니다. 아니면 서로 대화, 다툼 등 소통 과정을 통해서 더 서로 존중해주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참 다양해서 처음부터 좋은 의미의 거리 두기가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지요. 다만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예측 못한 상황에서 마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늘 바람이 춤추게 하기
요즈음 주변 지인과의 인간 관계에 대해 떠올리다보니 예술적인 시를 현실에 적용해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적 해석이 없더라도 칼릴 지브란의 시는 한 구절 한 구절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함께 있되 거리를 두어서 하늘 바람이 춤추게 하라니 저는 특히 이 문구에 매료 되었습니다.
이 시를 접하게 된 류시화 시인의 책을 얼마전에 서점에서 보게 되었어요. 예전에 본 그대로 표지도 똑같고 그 책에 푹 빠져들었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얼른 칼릴 지브란의 시를 찾아 펼쳤습니다. 내심 예전에 그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설레임을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시를 다시 보아도 여전히 제게는 제일 좋은 시였습니다. 이 시를 접한 책을 계기로 류시화 작가의 책들을 다 읽어 보려고 했고 책을 사모으기도 했었습니다. 생각이 나서 집에 와서 찾아보니 어디에 두었는지 보이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제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늘 하늘 바람이 춤출 수 있도록 함께 있되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좋은 의미로 거리 두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되 서로가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저의 경우 특별한 설명이 없이 상대방에게 거리를 둘 때도 있는 것 같아서 자기 반성이 되기도 해요.
또 상대방이 제게 좋은 의미로 거리를 둘 때 저는 그 모습을 오해한 적이 없나 생각도 해봅니다. 이런 저런 경험들을 떠올리면 또 이미 지나간 과거라서 바꿀 수는 없지요. 그럴수록 현재를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로 지내고자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와 함께 요즘 제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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